조선 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문화유산 가운데 7건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선 왕릉이 여덟 번째가 되는 셈이다. 풍수지리와 산수의 아름다움이 함축된 조선 왕릉이 세계적으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는 것인데, 한두 기가 아니라 무려40기에 달한다.
그 가운데 30기가 경기도에 분포하고 있다. 비록 조선 왕릉이 문화재청 소관이긴 하지만 최대의 수혜자는 경기도다. 조선 왕릉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당연히 해외의 많은 관광객이 찾게 된다. 왕릉과 관련해 경기도가 가장 많은 손님을 맞게 되는 셈이다.
태조 이성계가 묻힌 건원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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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왕과 왕비 소헌왕후가 함께 묻힌 조선 최초의 합장릉인 영릉(경기 여주군 소재). © G-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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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관련해 풍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조선 왕릉 조성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풍수지리다. 왕이나 왕비가 죽으면 가장 먼저 능 자리를 물색한다. 조정에서 근무하는 여러 지관(地官)이 도성 100리 이내에서 풍수상 좋은 자리들을 찾는다.
그들은 새로운 자리를 찾기보다는 명문가들 가운데 과거 급제자가 많이 나오고 장수하는 집안의 선영들을 우선 살핀다. 이들 가운데 풍수상 좋은 자리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후보지들이 나오면 총호사로 임명된 예조판서나 정승이 풍수에 능한 조정대신 및 종친들을 대동하고 직접 현장을 답사한다. 동행한 궁중의 화원(畵員)들이 현장을 스케치한 산도(山圖)를 들고 임금에게 결과를 보고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최종 후보지가 결정된다.
따라서 풍수지리상 최고의 명당을 찾는 것이 왕릉 조성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왕실의 번창 여부가 바로 이 왕릉의 풍수와 불가분의 관련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구리시 ‘동구릉’ 가운데에서도 맨 처음 조성된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을 보아도 그렇다. 1408년 이성계가 죽자, 지관이양달과 유한우 등이 여러 곳을 찾아내 추천한다.
이에 당시 영의정 하륜이 직접 가서 판단하기를 여러 번 한다. 이때 조정의 관리 김인귀(金仁貴)가 검암(현재 동구릉자리)에 길지가 있다고 추천하자 하륜이 현장을 가보고 능으로 결정한다.
지관이나 조정 대신들의 풍수실력이 좀 떨어진다 싶으면 재야의 풍수술사나 학자들이 참여하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고산 윤선도다. 고산 윤선도는 효종 임금이 죽자 당시 총호사로 임명된 좌의정 심지원의 추천으로 효종의 능 선정에 관여했다.
따라서 조선 왕릉은 그 당시 최고의 풍수학자 및 술사들에 의해 소점 된 곳으로 당시의 정치 상황이나 풍수 학인들의 풍수술이 다양하게 반영된다.
외국 관광객의 시선 끄는 풍수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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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LIFE |
조선 왕릉을 답사하는 국내외 관람객은 구체적으로 어떤 풍수적 특징이 능마다 드러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왕릉의문화유산해설사들의 고민도 해당 능의 풍수적 특징을 좀 더 자세하게 알고자 하는 관람객의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주느냐는 것이다.
외국인 관람객이라고 다를 바 없다. 그들도 이제는 풍수(Fengshui)가 낯설지 않다. 그들 나라에서도 이미 인테리어 풍수가 생활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직접 현장을 찾아서 무엇이‘청룡(Blue Dragon)’이며 또 무엇이 ‘백호(WhiteTiger)’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또 지기가 뭉쳤다는 ‘혈(PitHole)’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한다. 이제 왕릉 안내와 관련해 그 토대가 되는 풍수콘텐츠도 심화되어야한다.
이를 위해 국내외 관광객들로 하여금 각 왕릉의 아름다움과 풍수적 완벽함을 한눈에 파악할수 있는 전망점을 지정해주어야 하며, 한두 시간이 아니라 한 나절거리로 왕릉 뒷산(주산)과 능역을 산책하며 그 풍수적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무조건 울타리를 쳐서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래야 잠깐 와서 보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와서 먹고 자고 가는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 또 왕릉에서 풍수가 중요했다는 것은 왕릉의 이장(천릉)에서 알 수 있다.
세종의 무덤은 원래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옆에 있었다. 그러나 예종 때 현재의 경기도 여주로 이장하였다.
내곡동에 무덤을 쓰고 나서 왕실에 불행한 사건이 너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장남문종의 요절, 장손단종의 죽임, 세조의 아들 의경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세조의 질병…. 바로 그 때문에 경기도 여주로 이장하게 된다(현재의 영릉).
이후 이 영릉으로 이장한 덕분에 조선왕실이 100년은 더 연장되었다는 전설이 생기게 된다.
조선 왕실 수명 100년 연장시킨 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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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묻혀 있는 건원릉은 당대 최고의 풍수사들이 고른 터다. © G-LIFE |
수원에 있는 사도세자의 무덤융릉 역시 풍수적 이유로 이장한 대표적인 예다. 현재의 서울시립대 부근에 있던 당시사도세자 무덤이 흉 지여서 왕실에 불행한 일이 거듭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장하고 나서 1년 만에 정조임금이 왕자를 얻는데, 이 왕자가 훗날 순조임금이 된다. 정조뿐만 아니라 당시 온 백성이 그것이 명당 발복이라고 믿었으며, 그러한 연유로 화성이 축조된다.
왕릉에 뱀이 많이 꼬여서 이장한 경우(파주의 장릉)도 있고, 광을 파다가 나온 돌 때문에 이장한 경우(고양의 희릉)도 있다.
왕릉마다 갖고 있는 풍수 사연 하나하나가 소설감들이다. 구구절절 풍수적 사연을 담고 있는 왕릉의 구체적인 내용을 실감 있게 국내외 관광객에게 전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문화재청에 미룰 것이 아니라 경기도가 주체적으로 왕릉을 통한 외국 관광객 유치를 시도해볼 만하다. 그 수혜자가 경기도이기 때문이다.
글. 김두규(우석대 교수. 풍수학)
자료원:뉴스인 경기 2009.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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