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학군이 좋은 서울 강남의 10억원 전세 아파트를 미성년자 아들 B군 명의로 얻었다. B군은 잦은 해외 여행에다 제주도에 땅까지 샀다가 최근 세무당국의 조사를 받아 증여세 수억원을 추징당했다.
의류도매상을 하는 C씨는 소매상과 현금 무자료 거래를 하면서 현금 수입을 소득신고에서 뺐다. 그는 16억원을 보증금으로 주고 고급 빌라에 전세를 얻었는데, 국세청은 이 전세 자금이 사업소득을 누락시켜 마련한 것임을 확인하고 소득세를 추징했다.
고가 전세를 탈세 수단으로 활용하다 그간 세무당국에 포착된 사례들이다. 국세청이 요즘 이런 고가 전셋집에 사는 세입자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전셋값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웬만한 집값의 두세 배를 넘는 고가 전셋집이 늘면서다. 학군 수요가 많아 ‘교육특구’로 불리는 서울 강남 대치·도곡동에 나와 있는 10억원 이상 전세 아파트 매물만 200여 건이다.
자녀에게 불법 증여하거나
국세청은 5일 고가 전·월세 세입자 가운데 탈세 혐의가 있는 56명에 대해 자금출처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10억원 이상의 전셋집에 살거나 1000만원 이상의 월세를 내는 사람 중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대상이다.
세무서에 신고한 소득이 얼마 안 되거나, 미성년자인 경우가 대표적이다. ‘세입자’를 겨냥한 이런 조사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간은 주로 고가 주택 구매자들이 단골 대상이었다. ‘세입자=서민’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세 시장은 과세의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다.
국세청 이학영 자산과세국장은 “일부 자산가들이 세금 부담이 없는 데다 자금 출처조사도 없다는 점 때문에 고가 전세를 선호하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고가 주택 매입자와의 형평성을 맞추자는 차원에서 이번 조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인스랜드부동산에 따르면 전국의 10억원 이상 전셋집은 8월 말 기준으로 8899곳. 3년 전 7030곳에서 빠르게 늘었다. 이 중 98.8%(8796곳)가 서울에 집중돼 있다. 이번에 조사 대상이 된 세입자들도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서초·용산구의 고급 아파트나 빌라 거주자들이 대부분이다.
조사 대상자를 가리는 데는 해당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확보한 자료, 각 지방청이 평소 수집하고 있던 정보들이 활용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주로 사업가나 기업인이 많고, 무직자나 미성년자도 끼어 있다”면서 “이들이 전세로 빌린 집은 보증금이 최고 20억원이 넘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이번 조사가 한번 하고 마는 조사로 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최근 국세청은 국토해양부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받고 있는 ‘임대확정일자’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지를 타진했다. 확정일자 정보에는 임대인과 세입자가 언제, 어떤 조건으로 계약했는지가 기재된다.
국세청이 이 자료를 확보한다면 임대인은 물론 임차인의 세금 탈루 여부를 조사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이학영 국장은 “정보 공유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단계로 관련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자금출처조사=스스로의 힘으로 자산을 사들이거나 부채를 갚았다고 보기 어려울 경우 세무서는 자금출처에 대한 소명을 요구할 수 있다. 판단의 기준은 직업, 연령, 소득세 납부 실적 등이다. 자금출처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증여받은 것으로 보고 세금을 물린다.
자료원:중앙일보 2013.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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