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토지를 매입해 귀농하거나 전원주택을 지으려는 수요가 부쩍 늘었다. 사진은 경기도 양평 전원주택 단지 모습.
올 초 직장에서 은퇴한 이 모 씨는 귀농을 위해 최근 수도권 토지를 매입했다. 남양주, 용인, 하남, 파주 등 경기도 곳곳에 위치한 토지를 살펴보다 500㎡짜리 용인 토지를 8억원에 사들였다. 아담한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을 가꾸면서 노후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다. 이 씨는 “여윳돈이 별로 없어 토지 가격의 70%가량인 5억원을 대출받았다. 땅을 살 땐 대출 제한이 없는 데다 불황에도 땅값이 꾸준히 올라 아파트보다 투자가치도 높을 것 같다”고 전했다.
문재인정부가 주택 규제 방안을 속속 내놓으면서 갈 곳 잃은 돈이 토지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전국 토지 경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최고치로 치솟는가 하면 점포 겸용 단독주택용지 땅을 매입하려는 수요도 부쩍 늘었다.
부동산 경매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7월 전국 토지 경매 평균 낙찰가율은 지난 6월(77.1%) 대비 3.8%포인트 상승한 80.9%를 기록했다. 토지 낙찰가율이 80%를 넘긴 건 2008년 10월(83.2%) 이후 처음이다. 낙찰가율뿐 아니라 낙찰률(진행건수 대비 낙찰건수) 역시 44.4%로 12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 토지 낙찰가율이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73.4%를 기록했다. 지방광역시 토지 평균 낙찰가율도 100.6%로 지난해 10월 이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경남 사천시 사남면 농림지역 임야 4264㎡ 경매에는 응찰자 90명이 몰려 감정가(616만원)의 5배가량인 31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전국 땅값도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땅값 변동률은 1.84%로 2008년(2.72%)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국 토지 가격이 2010년 10월 이후 올 7월까지 80개월 연속 상승세라는 한국감정원 분석 자료도 있다. 사실상 최근 몇 년 새 땅값이 떨어진 시기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개발이 한창인 세종시 땅값이 상반기에만 3%나 올랐고 부산(2.88%), 제주(2.65%), 대구(2.09%) 등 전국 곳곳 땅값이 상승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 홍천 내촌IC와 가까운 토지의 경우 한때 3.3㎡당 땅값이 5만원에 불과했지만 최근 30만원 선으로 뛰었다.
▶주택 규제에 반사이익
고속도로 IC 주변 눈길
환금성 낮은 건 주의
거래도 활발하다. 올 상반기 전체 토지 거래량은 155만3739필지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10% 이상 늘었다. 건축물 부속 토지를 제외한 순수 토지 거래만 놓고 봐도 올 상반기 58만4903필지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4.9% 증가했다.
일명 ‘상가주택용지’로 불리는 점포 겸용 단독주택용지 인기도 여전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 4월 경기도 파주 운정지구에서 공급한 점포 겸용 단독주택용지는 11필지 분양에 1238명이 몰려 113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앞서 3월 경남 양산시 물금2지구에서 분양한 단독주택용지 경쟁률은 257 대 1에 달했다. 점포 겸용 단독주택용지는 3~4층 규모의 다가구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을 말한다. 분양받은 땅에 상가주택을 신축하면 꼭대기 층에 본인이 직접 거주하고도 나머지 공간에 주택, 상가를 임대해 월세를 받을 수 있다. 분양용지 크기는 필지당 198~330㎡ 정도로 수도권 기준 분양가는 대략 5억~8억원 선이다.
토지 투자가 인기를 끄는 배경은 뭘까.
문재인정부가 6·19 대책에 이어 8·2 대책으로 아파트 규제에 나서면서 토지 시장이 상대적으로 ‘풍선효과’를 누렸다는 분석이다. 서울 강남 재건축 거래를 막고 아파트 대출 한도를 줄이면서 규제가 덜한 토지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수요자들이 부쩍 늘었다. 실제 토지 경매 열기가 뜨거워진 사이 주거시설 경매 열기는 주춤한 분위기다. 지난 7월 주거시설 평균 낙찰가율은 전월 대비 1%포인트 하락한 88.8%에 그쳤다.
정부가 신도시를 비롯한 대규모 택지개발지구 신규 지정을 중단하면서 공공택지 희소성이 부각된 것도 영향을 줬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단독주택용지를 사들여 상가주택을 짓고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올리려는 수요자도 많아졌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 귀농, 귀촌하거나 주말농장 등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 토지를 대거 사들였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토지는 아파트와 달리 대출 규제가 없는 것도 매력이다. 이창동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8·2 대책으로 아파트를 비롯한 주택 시장이 위축된 만큼 토지 투자가 인기를 끌고 있다. 토지를 실제로 활용하려는 수요가 많아 부동산 경기에 좌우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종 개발 호재도 땅값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수도권 곳곳에선 광역급행철도(GTX), 경전철뿐 아니라 대규모 고속도로 건설공사가 잇따라 진행 중이다. 한동안 개발 호재가 드물었던 강원도에서도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양양 고속도로, 고속철도 신설 등 굵직한 교통 호재들이 넘쳐난다. 문재인정부 들어 국토 균형개발과 함께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추진되는 것도 땅값 상승 배경으로 꼽힌다. 정부는 임기 5년 동안 50조원을 투입해 전국 500여곳 노후 도심과 주거지를 정비할 계획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도시재생 뉴딜사업 후보지가 서울,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에 걸쳐 있는 데다 도로, 철도 개통 계획이 잇따르면서 저금리 시대에 갈 곳 없는 시중 유동자금이 토지 시장으로 유입되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토지 투자할 때 세금 부담도 대폭 줄었다. 올해부터 비사업용 토지의 장기보유특별공제가 적용되는 덕분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0년 이상 보유한 대규모 비사업용 토지를 팔 경우 양도세율이 52.8%에 달했지만 올해는 38.5%로 대폭 줄었다.
다만 토지 투자할 때 유의할 점도 많다. 기본적으로 토지는 주택보다 환금성이 낮다. 아파트와 달리 거래가 많지 않다 보니 시세가 들쭉날쭉하다. 투자에 앞서 제대로 시세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기획부동산에 속아 바가지를 쓸 가능성도 높다.
아무리 입지가 좋아도 도로가 맞닿아 있지 않아 쓸모가 없는 ‘맹지’는 피해야 한다. 개발제한구역이나 상수원보호구역, 도시자연공원구역이란 꼬리표가 달렸거나 주변에 송전철탑, 묘지 등 혐오시설이 자리 잡은 땅도 구입해선 안 된다. 이를 파악하려면 현장 답사는 기본이다.
상가 임대에 적합한 상가주택용지라도 덜컥 사들이는 건 금물이다. 인기가 높은 만큼 구입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LH가 공급하는 단독주택용지 분양가는 대체로 3.3㎡당 400만~800만원대다. 필지당 면적이 200~330㎡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땅값만 많게는 8억원까지 든다. 여기에 3.3㎡당 400만원 안팎의 건축비까지 더하면 웬만한 강남 아파트값 한 채 가격에 맞먹는다.
단독주택용지를 구입할 땐 1층이 상가로 조성될 만한 입지인지 따져보고 주변에 광역버스나 지하철, 도로 등 교통망이 잘 갖춰져 있는지, 접근성은 좋은지 눈여겨봐야 한다. 이왕이면 새로 개통되는 고속도로 IC와 멀지 않고 주변에 산업단지가 배치되는 등 임대수요가 많은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료원:매일경제 2017.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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