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찾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 400~500 일대. 드라마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담장 높은 최고급 단독주택 사이로 잡목만 우거진 나대지가 생뚱맞게 자리 잡고 있다. 쓰레기 투기를 막기 위해 흉물스럽게 쳐진 펜스와 곳곳에 그려진 낙서는 `부촌의 대명사=평창동`이라는 선입견을 무색하게 만든다.
22일 서울시 도시ㆍ건축공동위원회는 이 일대 주택 건립계획을 담은 지구단위계획 심의건에 대해 보류 판정을 내렸다. 경사도가 심하고 입목지(나무 서식지)가 많아 보존할 필요성이 높다는 게 이유이다.
평창동 400~500 일대는 북한산 자락에 자리 잡은 87만6717㎡ 규모 용지로 고급 주택가에 둘러싸여 주민들의 개발 의지가 높은 곳이다. 원래 이곳은 공원용지였으나 1970년대 초 정부가 공공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택지로 조성한 뒤 토지를 민간에 매각하며 개발이 추진됐다.
이후 공사를 거쳐 일대가 주택지로 조성됐지만 서울시 도시계획조례상 `경사도` `입목분수도` 조건을 맞추지 못해 주택건립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6년 도시계획조례가 바뀌면서 경사도와 입목분수도 요건에 상관없이 공공기여(기부채납)를 통해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됐다. 30년 넘게 지속돼 오던 규제 족쇄가 풀린 셈이다.
하지만 이번엔 서울시 도시개발 철학이 발목을 잡았다. 경사도가 심하고 녹지가 풍부한 점을 들어 해당 지역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서울시 관계부처 안에서 형성된 것이다. 결국 지난 22일 열린 서울시 도시ㆍ건축공동위원회에서는 평창동 개발을 위한 지구단위계획안을 보류시켰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토지를 매입하고 최대 40년 가까이 기다려오면서 기부채납 등 요구 조건을 모두 맞췄더니 이제 와서 궤도를 전면 수정한다는 게 이치에 맞느냐는 것이다.
주민 박흥종 씨(73)는 "이곳 땅을 산 이후 30년간 세금을 꼬박꼬박 내며 개발 승인이 나기만을 기다려 왔는데 이제와서 이를 막는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그렇다면 애초에 민간에 땅을 판 저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한탄했다.
안승만 `평창동 원형택지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100층짜리 건물도 아니고 2~3층 단독주택을 짓는 지구단위계획을 몇 년 동안 심사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며 "시민 재산권을 이렇게 제한해도 되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서울시 도시계획국 관계자는 "지난해 우면산 산사태가 터져 사회적 손실이 막대한 상황에서 경사도가 높은 평창동 400~500 일대 주택지 조성에 관해 신중해야 한다는 게 위원회 입장"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1970년대 초 정부에서 주택지 조성 용도로 토지를 매각해 놓고 40년 가까이 개발계획 승인조차 내주지 않는 데 대한 `재산권 침해`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자료원:매일경제 2012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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